러시아 국가두마, 붉은광장의 크레믈린 성벽 레닌 등 소련 지도자들 묘 이장 촉구, 공산당은 반대

국가 두마(Duma) 부의장인 보리스 체르니쇼프(Boris Chernyshov)는 크레믈린 성벽 근처의 묘지를 정리하고 레닌의 시신을 영묘에서 이전할 것을 제안했다. 그에 따르면 붉은 광장의 매장은 “모독”이다. 왜냐하면 이곳은 마을 사람들이 걷고 즐기는 공공 장소이기 때문이다. 볼셰비키는 10월 혁명 이후 크레믈린 성벽 근처에 지도자들을 묻기 시작했으며 그곳에는 매우 특이한 무덤이 있다.

보리스 체르니쇼프 의견에 의하면 도시 생활이 활발한 광장의 무덤은 그곳에 묻힌 사람들에 대한 신성 모독과 조롱이다. 그는 레닌이 미라처럼 사후에 노출되고 싶은 욕망을 표현한 적이 없다고 언급했다.

“나는 모든 시대와 인민의 지도자,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자가 모두 함께 필요한 모든 속성을 가지고 마침내 평화를 찾을 때가 되었다고 확신한다.”라고 덧붙였다.

소련 초대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 등 몇몇 사회 저명인사들도 레닌묘 이장을 제안한 바 있다.

공산주의자 들은 당연히 반대한다.

“러시아 공산주의자”당은 “붉은 광장의 역사적 매장 불가침에 관한” 법률 채택을 제안하며 국가 두마에 호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크레믈린의 입장>

12월 말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 대변인은 레닌 시신의 매장 문제는 시급하지 않다고 말했다.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 문제는 의제가 아니라 다른 의제가 있으며 다른 문제와 문제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19년에 방부 처리된 레닌의 시신을 만지면 안된다고 말했다. 푸틴은 “적어도 거기에 자신의 삶과 운명을 연관 짓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한”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푸틴은 레닌이 정치가가 아니라 구 러시아 제국의 연방화로 소련의 기초 아래 “폭탄을 심은” 혁명가라고 덧붙였다.

<크레믈린 성벽에 묻힌 사람들>

크레믈린 성벽 근처의 묘지는 1917년 11월 10월 혁명 직후 볼셰비키에 의해 세워졌다. 붉은 광장의 첫 번째 공동 묘지는 모스크바 군사 혁명 위원회(VRK)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곳에는 붉은 군대의 백위대 생도들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사람들이 묻혔다.

소련 영웅과 지도자 외에도 크렘린 성벽 근처에 묻힌 첫 번째 인물 중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들도 있다.

흐루시초프를 제외한 모든 소비에트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장과 많은 정치국원들도 묻혀있다.

<레닌이 묘소에 있는 이유>

볼셰비키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은 1924년에 사망했다. 그 직전에 스탈린은 소련공산당 정치국 회의에서 레닌의 건강이 악화되어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스탈린은 “오래된 러시아 관습과 모순되지 않고” 사망할 경우 시신을 매장할 것을 제안했다.

“내가 아는 한, 이 문제는 지방에 있는 일부 동지들에게 큰 관심사다…

레닌의 시신은 방부 처리되어야 한다. 이것은 오래된 러시아 관습과도 모순되지 않는다. 그를 특수 장비를 갖춘 지하실에 안장해랴”고 스탈린이 말했다.

붉은 군대 사령관 레프 트로츠키는 스탈린에 반대했다.

1924년 1월 22일, 세계 프롤레타리아트 지도자 레닌의 시신을 일시적으로 방부처리하여 고인과의 작별의 시간을 연장한 후, 시신을 장기간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RIA, Gazeta, 2022. 1. 3.